베트남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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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7. 18.

    by. 베트남 사상가

    목차

      틱흐엉디엔의 여성 명상 수행은 가부장제 질서에 균열을 내고 공동체 내부의 성찰을 유도하며 사회적 전환의 도화선이 되었다.
      명상이 종교적 실천의 틀을 벗어나 사회운동의 기반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맥락이 겹쳐져 있었다. 전쟁과 군사정권, 개발 독재의 시기를 지나온 베트남 사회에서 여성 수행자의 출현은 단순한 종교적 확산을 넘어서 삶의 질서를 뒤흔드는 상징으로 작동했다. 특히 틱흐엉디엔이 이끈 명상 수행은 공동체와 환경, 젠더 정의를 통합적으로 사유하는 전환적 실천으로 작동하며, 그 자체로 저항의 언어가 되었다. 이 글은 틱흐엉디엔의 수행 방식이 어떤 맥락에서 발생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적 변화와 연결되었는지를 관찰과 분석 중심으로 구성한 기록이다.

      틱흐엉디엔의 여성 명상 수행이 사회 변화를 만든 방식

      수행 공동체의 형성과 젠더 구조의 충돌

      틱흐엉디엔이 명상 수행을 공공의 장으로 끌어냈던 초기 시도는 남성 중심 불교 체계와 반복적으로 충돌했다.
      전통적으로 사찰의 결정권과 교육 권한은 남성 스님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여성 수행자는 하급 조력자로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초기 공동체 형성 단계에서부터 수행의 리더십을 여성 중심으로 재편성했고, 이로 인해 기존 수행 질서가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젠더 역할의 고정성을 깨는 이 구조 변화는 단순한 조직 운영 문제를 넘어, 종교의 언어로 젠더 평등을 실천하는 정치적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여기에는 경제적 자립 시스템이 동반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틱흐엉디엔은 수행자들이 외부의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농사, 공예, 교육 등의 자립 기반을 갖추도록 구조화했다. 이 같은 전략은 종교적 자율성과 여성의 주체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결과를 낳았고, 내면 수행이 곧 외부 사회의 구조 전환을 이끄는 촉매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로 기록된다.

       

      수행 공간의 재구성과 돌봄의 윤리

      틱흐엉디엔은 명상 공간을 폐쇄적·비가시적인 장소에서 공공적·일상적인 장소로 전환했다.
      기존의 불교 수행이 사찰 내부, 즉 특정한 종교적 장소에 한정되었다면, 그녀는 이를 마을 회관·학교·텃밭 등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접근 가능한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이 방식은 수행의 일상화를 가능하게 했고, 특히 여성과 아동, 노인 등 공적 수행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계층이 중심 주체로 떠오르는 전환을 불러왔다.

      수행이 사적 치유에서 사회적 실천으로 전환되면서 ‘돌봄’이라는 개념이 중심에 서게 되었다. 틱흐엉디엔은 명상이 단순히 개인의 평정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타인과 환경, 생명을 동등하게 대하는 삶의 태도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윤리는 돌봄노동의 가시화, 돌봄주체의 정치화와 맞물리며, 기존의 젠더 분업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특히 명상을 매개로 여성들이 조직한 공공급식, 간병 네트워크, 마을 교육은 지역 사회 내에 새로운 협동 시스템을 형성했다.

       

      전쟁 기억과 여성 수행의 저항성

      베트남 전쟁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전사자 가족, 생계 책임자, 공동체 회복의 실질적 주체로서 기능해야 했다.
      틱흐엉디엔은 이 경험을 수행에 통합했고, 전쟁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전후 재건을 이끄는 명상 공동체의 중심 축을 여성들이 맡을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했다. 그 과정에서 수행은 종교를 넘어서 사회적 기억을 보존하고, 공동체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실천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여성 수행자들은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의식뿐만 아니라, 집단 시 낭송·노래·기억 나누기 등의 방식으로 집단 저항을 수행해왔다. 이들은 ‘조용한 울림’을 통해 사회의 깊은 층위에 도달했고, 강한 언어와 구호가 지배하는 운동의 외연을 넓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틱흐엉디엔은 이 같은 수행의 저항성을 말보다 느림과 침묵, 공동체성이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음을 반복적으로 증명했다.

       

      틱흐엉디엔의 여성 명상 수행과 생태주의의 결합

      명상은 더 이상 개인 내면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았다. 틱흐엉디엔은 여성 수행자들과 함께 생태적 실천을 수행 안으로 끌어들였다.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 채식 기반 식생활, 비닐 사용 최소화, 숲 보호를 위한 공동 의식 등이 결합되면서 ‘수행=삶의 방식’이라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정착됐다. 이처럼 실천과 수행이 결합된 사례는 다른 아시아 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여성 중심 생태 공동체 모델이 복수로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환경 파괴가 삶의 기반을 위협할 때, 명상은 무기력한 도피가 아니라 적극적인 대안 체계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특히 틱흐엉디엔이 강조한 ‘자연과의 관계 회복’은 신비주의나 영성의 언어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구체적인 실천 행위로 해석되었다. 이는 명상을 수행자의 윤리에서 시민의 행동 전략으로 확장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수행 언어의 재구성과 여성 서사의 복원

      틱흐엉디엔은 여성의 언어가 수행의 중심이 되도록 명상 구조를 재편성했다.
      기존 불교 수행에서 사용되던 언어들이 남성적 교리와 수행담 위주로 짜여 있었다면, 그녀는 여성의 생애 경험과 감각, 몸의 기억을 수행 담론에 통합했다. 이는 침묵의 문화로 지워졌던 여성 서사를 복원하는 작업이었고, 동시에 여성 수행자들이 자신을 신비화하지 않고 일상 언어로 현실을 설명할 수 있게 만드는 훈련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출산·육아·노동·폭력의 경험이 명상 집담의 주요 주제로 다뤄졌고, 이는 단순한 고통 공유가 아니라 기억을 해석하고 공동체적으로 지지받는 과정으로 작동했다. 여성 수행자들은 이 경험을 문서화하거나 공동 창작의 형태로 기록화하며, 침묵의 시간을 언어의 시간으로 전환시켰다. 이 같은 구조는 단순한 수행 실천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던 존재들의 복원을 의미했다.

       

      틱흐엉디엔의 여성 명상 수행이 사회운동으로 확장된 방식

      처음에는 단지 내면을 다스리는 실천으로 출발했던 여성 명상 수행은 시간이 흐르며 사회운동의 실질적 전술로 확장되었다.
      틱흐엉디엔은 수행자들에게 언론 대응, 정책 제안, 지역 거버넌스 참여 등 정치적 역량을 단계적으로 훈련시켰다. 실제로 그녀가 조직한 수행 네트워크는 환경단체, 여성 인권 단체, 로컬 NGO와 연계되어 교육, 환경, 젠더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했다. 여기에는 수행에서 출발한 윤리가 실천으로 완결되는 전환 구조가 명확히 드러난다.

      특히 여성 수행자들이 주도한 사회적 협동조합은 단순한 생산조직이 아니라 돌봄, 교육, 공동체 기반 복지까지 포함하는 통합 모델로 발전되었다. 이는 명상이 자기 완성을 위한 수행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를 변형시키는 실천임을 입증한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틱흐엉디엔의 접근은 종교와 정치, 개인과 공동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수행의 사회화’를 현실로 구현해냈다.

       

      내부 비판과 확장 가능성에 대한 논의

      틱흐엉디엔의 여성 명상 수행 방식은 전통 불교계뿐 아니라 진보적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다.
      일각에서는 명상이 지나치게 정서적 위안에 집중되어 구조적 폭력이나 제도 개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한 여성 중심 수행이 남성 수행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내부 성찰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틱흐엉디엔은 이에 대해 “수행은 누군가의 언어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언어를 복원하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모든 수행은 재구성의 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비판이 그녀의 수행 체계를 위축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그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젠더, 계급, 지역, 종교 간 경계를 넘나드는 수행 모델은 지금도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틱흐엉디엔의 수행이 하나의 ‘운동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단일한 해답이 아닌 끊임없는 조율과 재배치의 방식으로 진화하는 명상 수행은, 사회 변화의 구조적 동력이자 문화적 실천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