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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탄은 민중이 스스로 현실을 자각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지식인의 실천을 정치 철학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는 단순히 억압에 저항하는 인물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재해석하고 민중이 말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장한 사유의 설계자였다. 레반탄의 철학은 분석보다 실천에 가까웠고, 명령이 아닌 제안의 언어로 이뤄졌다. 그가 남긴 철학은 베트남을 넘어 사회참여와 의식각성이라는 보편적 과제에 대한 응답이었다.
계몽은 지식이 아니라 자각이다
레반탄은 ‘민중 계몽’이라는 말 자체를 해체했다. 그는 지식인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구조를 비판했고, 오히려 민중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이 진정한 계몽이라고 보았다. 그의 교육관은 주입이 아니라 질문 위주의 참여형 방식이었으며, 문맹 퇴치보다 언어 권한의 복원을 더 중요하게 보았다. 레반탄에게 계몽이란 새로운 말하기 방식, 새로운 감각 구성의 문제였다.
그는 지식 전달이 아니라 감각의 회복이 계몽의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보았고, 이를 위해 ‘가르침의 권위’가 아닌 ‘듣기의 평등’을 강조했다. 레반탄은 민중이 기존의 지식 구조 안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스스로 구성하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계몽이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했고, 그 과정에서 교육자는 안내자가 아니라 대화의 파트너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유는 단순한 교육 방식의 전환이 아닌, 계몽의 철학적 본질을 재정의하는 급진적 기획이었다.
레반탄의 철학이 저항을 조직한 방식
레반탄은 지식인의 역할을 ‘비판하는 자’가 아닌 ‘구조를 설계하는 자’로 재정의했다. 그는 단순히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설명이 민중의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치적 기획을 설계했다. 레반탄은 집회, 출판, 구술사 전파 등 다양한 실천 기술을 통해 민중의 공간을 복원했으며, 이러한 활동은 당대 국가 권력의 통제 바깥에서 진행되었다. 그의 철학은 문서화된 이론이 아니라 행동으로서의 비판이었다.
그는 이론이 현실에 작동하려면 반드시 매개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 매개를 교육, 인쇄물, 공동체 조직이라는 실질적 장치로 구체화했다. 레반탄의 실천 철학은 단순한 참여의 언어가 아니었고,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전략의 언어였다. 그는 ‘모이는 기술’, ‘쓰는 윤리’, ‘말하는 주체’를 구체적으로 제안했고, 이는 베트남 사회의 의사소통 구조를 재조직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시위나 저항을 일회성 항의가 아닌, 반복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치적 언어 훈련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사유 속에서 ‘저항’은 감정이 아니라 전략으로 정립되었다. 레반탄은 철학이 구호에 머물지 않기 위해, 그 구호를 구조로 변환하는 기술까지 내재화하려 했다.
레반탄의 언어는 왜 선동이 아니었는가
레반탄은 민중의 언어를 단순히 대중적 어법으로 소비하지 않았다. 그는 민중의 감정을 윤리로 번역하고, 그 감정을 이론으로 조직했다. 레반탄의 글은 감정과 분석이 분리되지 않았고, 비판은 분노가 아닌 통찰에서 출발했다. 그는 언어의 격렬함을 자제하면서도, 그 격렬함보다 더 급진적인 사유의 명확함을 실현해냈다. 레반탄의 말은 행동을 위한 사유였고, 말하지 않으면 행동조차 무력화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의 글에는 언제나 설명 이전에 청중이 있었고, 그 청중의 감정을 해체하면서도 존중하는 방식으로 사유를 이끌었다. 그는 선동이라는 말이 대중을 감정의 동원 대상으로 취급할 때 발생한다고 보았고, 오히려 민중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철학화했다. 레반탄은 사유 없는 분노를 경계하면서도, 분노 없는 사유는 공허하다고 보았다. 그는 단어 하나하나를 현실의 감각에서 길어올렸고, 그 언어는 단지 슬로건이 아니라 감각화된 구조적 사유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글은 읽힐 때마다 새로운 해석이 가능했고, 대중은 그 해석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철학의 수용자가 아닌 생성자가 되었다.
민중을 주체로 재구성한 철학
레반탄은 민중을 ‘보호해야 할 약자’로 보지 않았다. 그는 민중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하고, 그 실천을 통해 사회적 윤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았다. 레반탄은 철저히 수평적 철학을 구축했고, 그 안에서 민중은 대상이 아니라 협력자였다. 이러한 사고는 민중을 위한 철학이 아닌, 민중과 함께 만드는 철학으로 전환되었고, 이는 이후 베트남 지성사에 결정적 전환을 가져왔다.
그는 주체라는 개념을 엘리트의 특권에서 끌어내어, 집단적 사유의 가능성으로 재배치했다. 레반탄에게 주체란 비판하는 자가 아니라 ‘재구성하는 자’였으며, 민중은 더 이상 연민의 객체가 아닌 사유의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 그는 철학을 민중의 경험 속에서 발굴했으며, 그 경험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출발하더라도 윤리와 정의를 설계할 수 있는 출발점이었다. 민중의 말, 민중의 글, 민중의 눈빛까지 철학의 구성 요소로 삼은 그의 사유 방식은 이후 베트남 민주 운동에서 이론적 토대로 계승되었고, 지식인의 위치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하게 했다. 그의 철학은 위로부터의 구조화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인식 생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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