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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 응옥 찌는 동양 사상의 전통과 서양 철학의 비판적 사유를 연결 지점에서 재해석한 베트남 현대 철학의 중추 인물이다. 그는 유학이라는 오래된 틀을 유지하되, 서구의 이성과 해체 담론과의 충돌 속에서 새로운 윤리적 중도를 모색했다. 쩐 응옥 찌의 작업은 단순한 전통 보존이나 서양 모방이 아니었고, 동서 문명의 충돌 속에서 베트남이라는 지역적 맥락에 맞춘 독립적 철학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그의 글은 지성의 언어로 쓰인 동시에, 공동체의 윤리를 복원하려는 실천적 기획이었다.
유학 비판에서 출발한 철학적 문제의식
쩐 응옥 찌는 유교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인물이었다. 그는 유교 윤리의 공동체 중심성과 역사적 지탱력은 인정했지만, 동시에 개인을 억압하고 권위적 위계 구조를 고착화하는 측면에서 명확한 한계를 지적했다. 쩐 응옥 찌는 특히 ‘효’, ‘충’, ‘예’ 등의 윤리가 현대 사회에서 정치적 복종과 분별 없는 권위 수용으로 오작동하는 지점을 분석하며, 유학이 새로운 해석 없이는 시대적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서구 사상의 수용과 재맥락화 전략
그는 서구 철학을 수입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해체하고 베트남 현실에서 재구성했다. 쩐 응옥 찌는 데카르트의 이성중심주의, 마르크스의 구조비판, 하버마스의 소통이론,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 등 다양한 철학 사조를 깊이 있게 독해했고, 이를 통해 베트남 사회 내부의 윤리적 공백과 사유의 얕음을 보완하고자 했다. 그는 서양 사상을 '채택'이 아니라 '통합된 재배치'로 이해했고, 그 과정에서 자주성 있는 사유구조를 구축했다.
윤리적 중도: 동서 사유의 통합 지점
쩐 응옥 찌는 유학의 공동체성, 서양의 자율성 개념 사이에서 윤리적 중도를 모색했다. 그는 개인의 자율적 판단과 공동체적 책임의 균형을 사유의 중심에 놓았으며, 이 균형이 무너질 때 사상은 도그마로 전락한다고 보았다. 쩐 응옥 찌는 동양의 감각적 사고와 서양의 개념 중심 철학이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중간 지점에서 인간 존엄, 책임, 공감이라는 가치를 재해석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서구의 자유주의가 강조하는 자기결정권의 논리와 유학이 중시하는 관계적 인간상 사이에서, 새로운 윤리 구성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자율성이 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하고, 공동체가 자율성을 억압하지 않도록 하는 중간 지점. 쩐 응옥 찌는 이 균형을 하나의 정적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는 조정과 재배치의 과정으로 보았다. 그는 유학을 도덕 규율이 아닌 사회 윤리의 구조로 확장시켰고, 서양 사상을 추상화가 아닌 적용 가능한 실천 윤리로 끌어내렸다. 이 철학은 공동체 내부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제도적 언어로 보호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실천 철학으로서의 글쓰기
그의 글은 단지 개념의 유희가 아니었다. 쩐 응옥 찌는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사회적 개입이라고 이해했고, 독자가 읽는 순간 철학은 존재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윤리적 책임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는 정치와 윤리, 교육과 제도, 일상과 언어 등 삶의 전 영역에서 철학이 침투해야 한다고 보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학술서, 에세이, 공개 토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를 풀어냈다. 그의 글은 단호하지만 교조적이지 않았고, 명료하지만 경직되지 않았다.
그는 철학을 일상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고, 철학자가 사회적 구조를 외면할 경우 사유 자체가 도피적 성격을 띠게 된다고 경고했다. 쩐 응옥 찌는 글쓰기란 고립된 방 안에서의 사색이 아니라, 사회적 공간과의 직접적 접촉임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그는 현실과 연결되지 않는 철학은 스스로의 무게를 잃고, 독자에게 닿지 않는 사유는 곧 무용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의 글에는 항상 하나의 ‘현장’이 존재했다. 그 현장은 때로는 정치적 구조였고, 때로는 제도화된 교육 시스템이었으며, 어떤 때는 개인의 양심이었다.
쩐 응옥 찌가 남긴 지식인의 사회적 윤리
쩐 응옥 찌는 철학자가 단지 지식 생산자일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지식인의 존재가 공공 영역에서 끊임없이 검증되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철학은 반드시 정치적 침묵을 깨뜨리는 언어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철학자는 침묵 속의 관찰자가 아니라, 불의한 현실 앞에서 고요를 깨는 자였으며, 윤리적 결단과 사회적 책임이 동반되지 않은 철학은 그 자체로 공허하다고 보았다.
그는 지식인이 비판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말하지 않는 상태를 가장 위험한 지성의 형태라고 규정했다. 쩐 응옥 찌는 지식인의 윤리는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발언이며, 그것은 단지 이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제도 속의 침묵에 대한 응답이라고 보았다. 그는 철학자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보다, 사회로부터 도망치지 않아야 한다고 보았고, 바로 그 태도에서 철학의 윤리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의 지성은 학문적 성과가 아닌 태도로서 기억되며, 오늘날에도 ‘말할 수 있는 용기’의 철학으로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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